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제목 | 환청과 함께 사는 삶
이름 | 고명석 작성일 |  13-01-09 조회수 |  1361
파일 | DSCN1738.JPG                           

회원 정치균(*자가병명 악동증)


※ 본수기는 회원 및 회원가족으로부터 동의를 받아 기재 되었습니다.


  저는 여수에서 태어났습니다. 여수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마치고 친구를 따라 경기도 성남으로 올라갔습니다.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를 하며 고등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. 고등학교 졸업 후 1년 후에 군대 입대하였습니다. 군대 생활을 잘 못해서 탈영도 하고, 그 때부터 정신병이 발병되었던 것 같습니다. 연대의무대를 거쳐 수도 통합병원, 광주통합병원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았습니다. 어머니께서 퇴원을 시켜주셔서 잠시 집에 있다가 수원 51사단에서 만기 전역하게 되었습니다.

  전역 후 집에서 생활을 하는데 기도원 사람들이 와서 기도원으로 잡혀가게 되었습니다. 기도원에서 금식하며 안찰을 받았는데 안찰을 받을 때 무척 아팠습니다. 기도원에서 6개월 정도 있다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. 그런데 갑자기 돌아가신 앞집 할아버지 소리, 환청이(“죽여 버리겠다!”) 들렸습니다. 머리도 아프고 힘들었습니다. 그래서 조선대학교 신경정신과로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. 병원에 입원해서 가만히 못 있는 다고 묶여 지내기도 했습니다. 죽고 싶다는 생각에 창문을 열고 뛰어내리려고도 했습니다. 조선대학교병원 입원비가 너무 비싸서 6개월 후 국립나주병원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. 그 이후 국립 나주병원에서 7년 동안 일곱 번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게 되었습니다. 환청은 계속 이었으며, 앞집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목소리, 환청(죽여 버리겠다!)과 함께 앞집 아들의 목소리, 환청(“죽여 버리겠다는 말씀 하지 마세요!”), 여수 시내 사시던 돌아가신 할아버지 목소리, 환청(좀 더 무섭고 심한 환청, “죽여 버리겠다!”)이 추가로 생기게 되었습니다. 지금은 없지만 나주병원 첫 퇴원 후 집에 있을 때 눈앞에 뿌옇게 뭐가 보이는 환시도 있었습니다. 병원에 입원을 하면 환청이 조금 덜 들렸는데, 퇴원해서 집에 있으면 또 심하게 들리고 힘들어서 제가 병원 입원시켜달라고 했습니다.

  어느 정도 안정이 된 후에 소개로 농장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. 그러나 충분한 임금을 받지 못하고 용돈 정도의 임금을 받으며 6년 동안 매일매일 일을 했습니다. 3년은 컨테이너 박스에서 숙식을 하며 일을 했고, 그 이후 3년은 혼자 살면서 주인이 갖다 주는 것으로 식사를 대신하며 살았습니다. 힘들었습니다. 그러나 마땅히 갈 곳도 없어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. 스스로의 힘으로는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렀을 때 국립나주병원 사회사업과 선생님의 도움으로 나주베델에 올 수 있었습니다. 베델에서 생활한 지도 벌써 1년이 되어갑니다. 베델에서 센터에 다는 것이 즐겁고 재미있습니다. 사람들과 같이 생활하는 것이 좋고 서로 어울려서 좋습니다. 반찬도 만들어서 먹고, 국도 끓여서 맛있게 먹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. 농장에서는 혼자서 생활했는데 베델에서는 회원들과 같이 생활하는 것이 즐겁습니다. 지금도 나를 욕하는 환청과, 담배를 피우라는 환청이 있어 괴롭고 힘들지만 앞으로 결혼도 했으면 좋겠고, 더 좋은 일들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.


*나주베델 회원들은 의료적 진단과 별도로 주 증상과 관련된 자기병명을 만들어 가지고 있습니다.
 악동증이란? 끊임없이 기분 나쁜 환청이 있어 들리는 것을 표현 한 것입니다.


 

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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